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링컨이 성공한 주된 요인은 지극히 복잡한 사건이나 쟁점을 “단순한 단위”로 분해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이었다. 링컨은 허둥대거나 준비한 원고를 읽지 않고 “잘 훈련된 암기력”에 의존하며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링컨은 친구들과 대화하듯이 배심원들과 친근하게 대화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동료 변호사이던 헨리 클레이 휘트니의 표현을 빌리면 “링컨의 논증은 논리적으로 깊이가 있었음에도 이해하기 쉬운 편”이었고, “주로 평이한 단어로 이루어졌고, 화려하게 꾸미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 한 일리노이 주 법원 판사는 링컨의 변론법을 “그는 자신이 아니라 배심원이 사건을 심리하는 것이라 믿게 만드는 흔치 않은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고 핵심적으로 정리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
명성이 높아졌지만 링컨은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개발을 위한 학습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똑같이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했다. 진정으로 상대와 공감하며 조금의 꾸밈도 없이 모두를 다정하게 대했다. 그가 23세 상거만 강둑에 올라 정계 진출을 선언했을 때 뉴 세일럼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도 이런 겸손한 덕분이었다. 한 동료 변호사는 “재판을 위한 순회 과정에서 링컨만큼 잘난 체하지 않는 변호사는 없었다. 링컨은 남보다 우월하다고 과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변호인단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앞에서도 우쭐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여관 식탁의 자리 배치에는 법정 서열이 반영됐다. 데이비스 판사가 상석에 앉았고, 그 주변에 변호사들이 앉았다. 언젠가 링컨이 일반 의뢰인들에 둘러싸여 말석에 앉자, 여관 주인이 “잘못 앉으셨습니다. 상석으로 가시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링컨은 “내가 저기서 먹는 게 더 편하십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여기에 앉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미친 듯이 공부하라.
오래전부터 링컨의 연설을 들어온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저 친구가 언제 노예제도의 역사를 저렇게 완벽하게 공부했지?”라고 물었다. 연방 하원에서 참담한 시간을 겪고, 기대한 고위직에 임명되지 못한 이후, 오랫동안 자신을 되돌아보며 깊이 생각하고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였다. 자기 의혹에 빠진 시련의 시간에 링컨은 더욱 노력했고, 개인적으로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다시는 자기만이 정의롭다고 우쭐대지 않았고, 복수하려는 마음에 상대에게 굴욕감을 주려는 수단으로 상대를 조롱하거나 풍자하지 않았다.
참고: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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