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 감옥 속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갖춰져 있고 텔레비전 수상기와 오디오가 놓여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이 그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풍요로운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인간이고,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한다. 그런 물음과 대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한 각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각성, 자기 존재에 대한 각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각성을 통해서 비로소 마음이 열린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이미 열려 있는 세상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세상과 내가 하나를 이룰 수 없다. 세상과 내가 하나를 이루지 못하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파도 위에서 겉도는 것에 불과하다. 마음이 열려야만 세상과 내가 하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마음이 열려야만 평온과 안정을 이룰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묻지 않고는 그 해답을 이끌어낼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거듭거듭 물어야 한다.
모든 것은 세월의 풍상에 씻겨 시들고 허물어져 간다. 거죽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불교 용어로는 ‘무상하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무상하고 덧없다. 항상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 늘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만일 이 세상이 잔뜩 굳어 있어서 변함이 없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변하기 때문에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로 살 수도 있는 것이고, 오만한 사람이 겸손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두운 면이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변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의 중심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심은 늘 새롭다. 거죽에 살지 않고 중심에 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 원초적인 물음을 통해서 늘 중심에 머물러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각성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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